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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엄마의 보통날

[육아에세이 #1] 나의 세상 (엄마의 20년 by 오소희)

by 또리맘님_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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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 날은 어떻게 되는걸까? 어제는, 그저께는 뭘 했었지?
앞도 뒤도 돌아볼 틈 없는 숨가쁜 육아,
아이에게 푹 빠져 몰입하는 매일을 보내는 중이다. 너가 내가 되어 무아지경의 행복도 느꼈다가
원인없는 울음에 먹구름이 몰려올 때도 있다.

이제 좀 편해지나 싶으면 매일, 매 달 바뀌는 아기의 변화에 맞춰 아이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대처한다.
아이의 눈빛을, 표정을, 울음소리를, 옹알이를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원하는 것을 듣고 필요한 것을 본다 .
그렇게 순간까지도 열과 성을 다하는 까닭은,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내어 놓았기 때문에.
최고는 아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해 돌보아주겠노라,
언젠가 혼자 서게 될 때 필요할 것들을 준비해주겠노라 하는 마음이다.


문득 아이가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내 삶은 남아 있을까? 아이가 내 모든 것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자기 방어적인 결말이 머릿 속에 스칠 때가 있어 아이와 나의 삶을 떼어놓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들다가도
아기에게는 잠을 자는 중에도, 잠에서 깰 때 조차도 내 살과 냄새가 필요함을 알기에
'일단은' 내 모든 것들, 예를 들어 시간과 에너지와 아이의 징징거림에 꼭 안고 웃으며 토닥이는 여유까지도
모두 주는게 맞다는 엄마로써의 본능적인 답을 찾는다.

임신 기간 만 9개월 동안 나는 온전히 내 뱃 속의 이 작은 세포를 안전하게 지킬 생각만 했더랬다.
배에 손을 올리고 내 체온을 전하며 조심조심 걷고, 매일 행복한 것들만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출산 부터 지금까지 아기가 내가 되는, 미혼 때는 이해 하고 싶지도 않던 뻔한 엄마의 삶을 살고 있다.
카톡 프로필에 제 새끼의 사진을 올려두는 '맘'의 삶이지만, 아기가 곧 내가 됨이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내 새끼가 내 새끼로 태어나 줌이 그리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한 살, 두 살, 세 살. 미치도록 행복하고 미치도록 힘겨운 엄마의 특권을 누릴 때라는 한 시를 읽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잘 알기에 아이의 환한 웃음을, 부비댐을 단 한 번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언젠간 나도 내 세상을 되찾게 되겠지?


엄마의 20년 by 오소희

한 살 두 살 세 살

처음 3년은 너를 먹이고 재우고
그저 건강히 잘 키우는데 쓰마.
너의 미소도
너의 똥도
모두 나를 미치게 할 것이다.
나는 미치도록 행복했다가
미치도록 힘겨울 것이다.
이런 '미침'은 엄마만의 뜨거운 특권.
나는 웃다가,
울다가,
그 어떤 경우라도
다시 네 자그만 손바닥 냄새를 맡고 일어설 것이다.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이 4년은 너와 함께 하는 순간마다
뛰고 웃고 노래하는 데 쓰마.
봄의 꽃나무 아래를 함께 걸을 것이다.
가을 낙엽 위를 함께 뒹굴 것이다.
너는 시인의 어휘로 꽃과 낙엽을 낭송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오롯이 음미하는 영광스런 청중이 될 것이다.

어쩌면 너는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 몇 바늘 꿰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왕성히 회복할 것이다.
내가 아파 누우면 내 이마에 흥건한 물수건을 올려주며
제법 근심스런 표정을 짓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이 하루하루가
엄마와 자식 사이의 황금기임을 알 것이다.
알기에 제대로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여덟 살 아홉 살 열 살 열한 살 열두 살

이 5년은 네가 네 방식대로 생을 펼치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쓰마.
내 잣대로 너를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너를 속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잘하는 아이라면
그 또한 내게는 기쁨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세상의 잣대로 못하는 아이라도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그 누구보다 너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장점으로 생을 일구는 법을 배우게 되어 있으니,
유사 이래 내내 그래 왔으니,
시절의 겁박에 새삼스레 오그라들어
너를 들볶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때의 내 진정한 숙제는
이전에 겹쳐 있던 너와 나의 생을 따로 떼어 놓고
나란히 세우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네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의 세계를 가꿀 것이다.
네가 너의 생을 펼칠 때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가끔 나의 세계를 노크하고 참고할 수 있도록.

열세 살 열네 살 열다섯 살 열여섯 살

이 4년은 너를 모르는 척 하는데 쓰마.
네가 네 길을 네 식으로 모색할 수 있도록.
나의 방해로 인해
아예 모색의 길을 떠나지 못한다거나,
모색의 길에서 중간에 돌아온다거나,
그런 비극이 없도록 나는 빠져 있어 주마.

믿으면서,
너를 믿으면서,
너를 믿는 나를 믿으면서,
나는 담담히 내 세계를 가꾸고 있을 것이다.

네 인생이다.

기성화된 내 눈에
너는 실컷 아둔하게 방황하라.
실컷 기이하게 방황하라.
너는 신세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갈 특권이 네게 있다.

늙은이들의 약아빠진 조언에 겁먹지 마라.
꽉 막힌 세상의 셈법에 굴복하지도 마라.
예비해두지도 마라.
탕진해도
방전되어도 좋다.
밧데리가 다 나가 기절하고 깨어난 뒤
현기증을 느끼며
네가 첫 눈을 뜨고 볼 세상,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것이 네 것이다.

열 일곱살 열 여덟살 열 아홉살

이 3년은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네가 모색한 바를 내게 들고 와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할 것이니.
진실로 나의 할 일은 그 항목을 충족시키는 데에 그칠 것이다.
너는 이미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애초에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의 도움만을 요구 할 것이다.
사실 네가 내 눈에 띄는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가 여덟 살이 된 이래로,
홀로 담담히 가꿔왔던 내 세계에 집중할 더 많은 자유를 얻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목매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을 것이다.
두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존중할 것이다.

나는 네 젊은 세계에 감탄할 것이다.
네 무모함과,
네 불안정함과,
그럼에도 두려움을 꾹꾹 누르고 나아가는
네 의지에 감탄할 것이다.

너는 가끔 생각난 듯
나의 세계를 힐끗 들여다볼 것이다.
그것이 잘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래, 되었다는 듯
한번 따끈히 안아주고
총총히 네 바쁜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힐끗, 네 한 번의 시선과
따뜻한 네 한 번의 허그,
그것으로 되었다.
나는 또 살아갈 것이다.

스무 살

너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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