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딸네 집에 오신 날 하필 입술이 터져서 피떡이 지는 바람에 그간의 육아가 힘들었노라 공표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아침마다 출근 전에 빨래 개고 설거지하고, 퇴근 후 쓰레기 버리기와 자기 전 아기방 정리, 젖병 씻기까지 떠맡은 사위는 내 터진 입술을 보며 머쓱한지 왜 오늘따라 수척해 보이고 그르냐며 볼멘소리를 건넸다.
덕분에 친정엄마는 3일간 아기를 봐줄테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해주셔서 리스트를 작성했다.
피부관리받기, 브런치 먹기, 영화보기, 도서관 가기, 쇼핑하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무한 반복)"
"엄마 좀 그만 불러, 엄마 노이로제 걸리겠다."
말할 줄 아는 단어 몇 개 없는 와중에 엄마가 제일 좋아 그런가, 이유없이도 부르고 싶은 그 이름이 엄마라 그런가.
쉴 새 없이 엄마를 부르는 아기를 보고 애기 아빠는 엄마 노이로제 걸리겠다며 농담처럼 말을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정말 정신을 단단히 차리지 않는다면 노이로제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아기의 세계엔 오로지 엄마와 자기 둘 뿐이다. 취미는 엄마와 놀기, 제일 잘하는 건 엄마와 함께하기, 제일 좋아하는 것도 엄마와 함께 있기, 유일한 친구는 엄마, 제일 좋은 것도 엄마. 잠시라도 떨어져 있기엔 우린 너무 사랑하는 사이.
내가 샤워를 할 땐 옆에 꿋꿋하게 서서 튀는 샤워기 물을 다 맞고 서 있는다. 양치를 할 땐 뚜껑을 닫아놓은 변기 위에 올라가 엄마를 지켜준다. (뚜껑을 열어두면 변기에서 물놀이를 해서...) 잠잘 때 엄마의 살이 느껴지지 않으면 엄마엄마! 하고 벌떡 일어난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놀다가도 금세 엄마를 찾아 욕실 안방 할 것 없이 문을 열고 찾는다. 집착인가 사랑인가 뭐든 간에 내가 누군가에게 이토록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엄마도 혼자있고 싶을 때가 있다. 너와 단둘이 있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세상을 혼자서 오롯이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숨을 좀 쉬고 나면 다시 너와의 이인삼각 경기를 다시 달릴 힘이 난단다.
마음 같아서는 호텔 잡아두고 일주일은 뒹굴거린다거나, 여행이라도 훌쩍 다녀오고 싶지만 그건 양심상 당치 않을 소리고, 낮에 친정엄마께서 아기를 맡아주시는 와중에 소소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기에 행복했었다. 3일간의 짜릿했던 자유는 끝이 났지만 오래간만에 느꼈던 들뜨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엄마는 오늘도 또다시 육아에 매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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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쉬는 시간 꼭 필요해요! 육아는 장기전.. 몸 잘 챙기셔요 또리맘님🥲
답글
아이가 기관가면 좀 나아지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덥쑥님 둘째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저희 둘째는 누나 스케줄에 맞추느라 아직 낮잠도 두번 재우고 있어요ㅠㅠㅎㅎ 3월에 어린이집 가게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