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관리'라는 흔하고 뻔한 단어가 올해 들어 가슴에 꽂혔다.
연예인이나 쓰는 줄 알았던 그 한마디가 지금 내가 필요한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해가 지나며 한 해의 계획이랄까, 목표랄까, 바람 같은걸 생각해봤다.
새해라는 좋은 구실이 명분없이 흘러가던 일상에 기회를 준다.
아기 낳고부터 도전해보고 싶던 프리다이빙이라던가, 영남알프스 등정과 같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신나는 일들도 떠올랐지만
임신 때 찐 살 빼기, 영양가 있게 잘 챙겨 먹기와 같은 소소한 것들이 이내 마음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자기관리하기' 였다.
아침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는 주부들의 다이어트 성공스토리가 유독 많이 나온다.
'연년생 아이를 연이어 낳고 보니...'
'밥 챙겨먹을 시간이 없어 배달 음식으로 때우다 보니...'
'집에서 애만 보다보니...'
주로 함께 나오는 멘트들이다.
우울증도 겪고 폭식을 반복하고 그러다 보니 30킬로가 쪘는데 어떤 계기로 힘든 노력을 해서 몸짱 아줌마가 되었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동병상련의 주부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다.
* 첨언하자면 그 비법은 첫째 돈이 들지 않아야 하고, 둘째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설거지할 때 옆으로 다리 뻗어 스트레칭 하기, 걸레질할 때 코어에 힘 주기와 같은
일상의 틈을 운동으로 채우라거나, 샐러드에 스피루리나 가루를 두 스푼 뿌려 먹는다거나 하는...
육아를 하기 전의 나는 그런 프로들을 접하면 자기 관리 안 되는 게으른 여자들의 핑계라고 생각했다.
빵을 먹을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된장찌개를 먹을 것인가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하는 순간의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인데
매 순간의 결정에서 늘 내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초이스 하면서 그 결과가 상황 때문이라고 미루는 꼴이라니.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나는 당연히 저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30킬로가 찐 건 아니다.)
아무튼, 어미가 과거형으로 끝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지금 그녀들을 이해한다.
24시간.
밤새 내 옆에서 꼼지락거리면서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엄마를 찾은 후 안도하며 다시 잠드는 아기와의 밤까지 포함하여
말 그대로 24시간을 내리 함께 하는 육아.
"엄마 쉬하러 갔다 올게 변기에 있을 거야." 하고 화장실을 가리키는 동시에 목젖이 보이도록 울어재끼는 23개월 아기와 함께하는 육아.
밥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얼마 되지 않아 싸는 응아를 치우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옷 입히고,
간식을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다시 응아를 치우고,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히는 루틴의 반복 속에서
나에게 달달한 간식과 커피의 조합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생명수와 같았고,
아기를 돌보며 먹이느라 내 입에는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이병의 짬밥과 같은 밥 한 끼를 먹고 나면
아이스크림 세 개를 연달아 먹어야지 허한 마음이 진정이 되는 폭군 아닌 폭식꾼이 되어있었다.
배달음식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친정엄마의 한 상과 같은 음식이다.
순간의 초이스는 빌어먹을. 이게 나를 위한 선택이다!
자기 관리 안 되는 여자의 핑계라는 점에는 동의하나 게으른 여자는 아니었다.
아기가 10개월이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서 정원이 생겼다고 전화가 왔다.
아기는 여전히 엄마의 따스한 눈빛이, 손길이, 가슴이 절실히 필요했고 고민 없이 거절의 의사를 에둘러 밝혔다.
백번 이해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돌아왔다.
나 역시도 임신 후 똑게 육아라는 베스트셀러 책을 읽으며 곱씹었다.
'똑똑하고 게으르게' 육아를 하자는, 똑 부러지는 엄마들이 선호할만한 책이었다.
똑 부러지게 육아할 줄 알았던 나도 책을 바이블처럼 읽고 또 읽고 외워가며 동의를 했다.
"아이와 수면 분리해야지. 그게 아이의 안전에도 좋고, 엄마인 나의 수면 퀄리티도 중요하니까."
라고 나불거렸던 그때의 내 입을 좀 누가 닫아주었으면.
아이의 얼굴을 맞대고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잠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때는 알지 못했고
돈을 주고 남에게 내 자식을 맡기는 게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 일인지,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기를 낳기 전엔 너는 너, 나는 나로 살려고 했으나 낳고 보니 낳아버린 책임이 너무도 컸다.
그렇게 나 하나 챙길 그릇도 부족한 내가 엄마가 되어서 오롯이 나를 의지하는 미니 휴먼을 낳아
두 명분의 몫을 해가며 헌신을 하다 보니 내 몸이 헌신짝이 되어가고 있다.
부르트고 갈라져 피가 난 입술을 보며 남편이 대체 왜 립밤을 안 바르냐고 물었다.
".... 그럼 아기한테 뽀뽀를 못하잖아."
올 해에는 기필코 자기 관리를 하겠다.
자기 합리화 대신에 매 순간 건강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아이스크림 세 개로 마음의 안식을 느끼지도 않겠다.
몸뚱이의 살을 도려내고 싶은 마음보다는 내 몸뚱이를 아껴주는 여자가 되겠다.
(그리고 내 년 이맘때 다시 글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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