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생겼다.
멋진 사람들의 멋진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나 역시 적당히 비슷한 맥락으로 투 머치한 정보는 자제하고
적당한 겸손을 섞어 나를 알렸다. 말을 하고 보니 내 껍데기의 나열일뿐 진짜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뭐, 사람들은 내 취미가 뭔지 보다는 내 껍데기가 궁금했을테니까 상관없을 테지만 말이다.
어렸을 때는 내 이름만 이야기 하면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거기에 전공과 학번이 붙는다.
그리고 직장인의 자기소개는 이름, 나이, 직업 세 개로 살아온 삶이 설명된다.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직업이 주부가 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알릴것인가가 애매하다.
사실 기회도 많지 않을 뿐더러 할 기회가 있다 해도 내 얘기보다는 아이가 몇 명인지, 몇 개월인지 얘기한다.
나이나 학벌을 이야기하는 것은 통념상 부적절하기에 보통은 전공 및 과거의 직업으로 주부 이전에 살았던 삶을 설명한다.
과거에 머물러있다는 사실이 사실은 슬픈 시점이다. 왜냐하면 현재는 '엄마이자 아내'로 대변되는 나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인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가, 행복한가의 질문과는 다른 문제이다.
82년생 김지영 영화에서도 엄마들의 자기소개가 나온다.
- 아영엄마는 전공이 뭐예요?
- 저는 국문과..
- 소설가 뭐 그런거?
- 아니..입학할 때나 꿈꿨지 졸업하고는 광고회사 다녔어요.
- 그러시구나..
- 자기 전공이 뭐라그랬지?
- 나는 우리 보람이 책 읽어주려고 연기 전공했습니다.
- 맞다 맞아.
그렇게 아쉬움이 남는 자기 소개 그 이후... 또 갑작스레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생겼다.
"저는 박재범을 좋아합니다. 육퇴 후 박재범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합니다!"
하고 벼뤄둔 자기소개를 했다. 속이 어찌나 후련하던지.
그리고 우리는 한참을 그의 매력에 대해 얘기했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 아이스 브레이커가 되어준 셈이다.
생각해보니 나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은 더 많다.
담부터는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며 범죄 스릴러 영화광이고 음악을 좋아한다고도 덧붙여야겠다.
엄마이고 주부인 나지만 과거의 나 뿐 아니라 이런 현재의 나도 살아있으니 말이다.
자매님들이여, 자기소개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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