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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엄마의 보통날

[육아에세이 #7] 남편의 백수선언

by 또리맘님_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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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 계속되는 자격시험들과 끝없는 수련 생활.

아이는 남편의 전문의 시험 3일 전에 세상으로 나왔고, 신생아 육아와 코로나 최전방 사이를 오고 가며 전쟁처럼 살았다.
그리고 남편이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응원을 했다.
그래, 그간 너무 고생 많았노라. 쉬면서 체력도 회복하고 가족끼리 여행도 많이 다니자고.
남편은 삼식이는 안 하겠다며 자신이 먹을 도시락을 스스로 배달시키는 준비성도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며칠이 지나고... 나에게는 큰 아기와 작은 아기, 아들이 둘이 생겼다.
오해하지 마시라. 큰 아기는 우리 또리고 작은 아기가 남편이다. 우리 큰 아기는 이제 25개월 형아로 어엿하게 성장해서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날개짓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엄마가 화장실에 가도, 목욕을 해도 의젓하게 문 앞에서 장난감을 놓고 기다릴 줄 안다.

그런데 남편은 18개월 재접근기 아기가 되었다.
꼭 아내를 대동하고 슈퍼에 장을 보러 가야겠단다. 혼자 좀 갔다 오면 안 되냐고 하니 혼자 무슨 재미로 가냐고 한다.
아니면 혼자 여행이나 호캉스라도 갔다 오라니 그것도 혼자는 안 간단다.

신생아로 회귀하려고 하는지 하루종일 자다가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 먹고 하루 종일 먹고 자고를 반복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남편의 시계도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간 힘들었으니 푹 쉬게 두자라고 아내로서의 내 이성은 생각하지만, 혼자 아기 뒤치다꺼리를 하는 엄마로서의 내 감성은,
보고 있는데 복장이 터진다. 소파에 누워 시체놀이를 하는 남편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 자기 출근 안 해?

내과 김과장.. 아니 이젠 백수 김가장님



아줌마들이 남편보고 큰 아들이라 조크하는 거 너무 싫어했는데 이젠 이해가 간다.
차라리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연민이라도 느껴지니 그녀들은 그렇게 마음을 다스렸던 것이다.
왜 우리는 영원히 여자와 남자로 남을 수는 없는 것인가? 난 남편을 영원히 내 남자로 느끼고 싶다고.


"내 관절이 우둑거려. 자기 고생했네."

좋은 소리는 결코 안 해주는 남편이 웬일로 육아 며칠 하더니 철이 들었나 보다.
육아가 일이야? 우리 아기가 자기에겐 일이냐고? 하던 남편이 "아 맞다. 육아는 일이지." 하고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조금 전엔 아기를 데리고 바깥으로 외출을 갔다. 단 둘이! 
어김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은 울리고 이럴 땐 어떡해야 하냐 묻긴 하지만,
아들 둘이 나간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한 집에서 차 한잔의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남편의 백수생활도 점점 자리를 찾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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