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육아/엄마의 보통날

[육아에세이 #8] 오미크론 감염으로 얻은 것

by 또리맘님_ 2022. 3. 14.
728x90
반응형

 



신규 확진자 38만 명, 역대 최다라는 숫자 속에 내가 포함이 되어있다. 3차 접종을 맞은 지 3일 만에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어디서 걸렸을지 생각하는 호사는 접어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판단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과 아기는 검사 결과 음성이었다.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것, 그리고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남편은 난처한 듯 보였다. 이제까지 전적으로 육아는 주부인 내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남편을 '시켜서' 아기 밥을 먹이거나, 퇴근 후에 좀비가 되어서 아기랑 같이 있어주기는 했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 함께 있는 게 전부이다 보니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 아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동물과 교감을 하는 사람을 동물의사소통사(animal communicator)라고 부른다. 나는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지만, 아이들과 특별히 교감을 잘하는 사람들은 봤다. 베이비 커뮤니케이터라고나 할까? 어떤 이는 아기가 자다가 울면 대체 왜 우냐고 짜증을 내지만, 어떤 이는 자라는 게 힘이 드는구나, 엄마 냄새가 곁에서 나지 않아 무서웠구나, 바깥이 엄마 뱃속과는 다르게 너무 시끄러웠구나 하고 아기 마음을 헤아린다. 모든 이가 부모라고 해서 내 아이를 잘 읽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언뜻 말이 통하는 것 같아 다 컸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만 3~4세가 되어서야 어른의 말을 60~80% 정도 이해한다고 한다. 아이는 생각보다 더 연약하고, 더 미성숙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왜 이걸 못해, 왜 말을 안 들어, 왜?라는 질문을 하는 자체가 폭력이다.


그리고 남편은 첫날부터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왜 아빠 말을 안 들어!
두 번째 실수는 윽박지르는 행위였다. 앉아! 앉으라고!
세 번째 실수는 부정적 어투였다. 김 또리, 이거 안 하면 저거 안 줄 거야.


육아가 어려운 점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했던 일의 계속되는 반복이다. 밥 세끼와 간식 두 끼를 챙기는 일, 기저귀를 갈고 끙아를 씻기는 일. 어질러놓은 것을 치우는 일. 이는 육체적 피로와 함께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둘째, 아이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보편적인 사회 질서를 알려주는 일을 교육이라고 부르고 이는 부모가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셋째,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아이는 표현력도 많이 부족하고, 감정도 어른처럼 구체적으로 세분화되어있지 않다. 경험의 폭도 좁고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넷째, 인정받기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밖에 나가서 재화를 벌어오는 일보다 한참 의미가 없는 일로 여겨진다. 보육과 교육, 거기에 무조건적인 사랑 한 숟갈을 더한 육아는 한 인간을 성장시키는 일이며, 신체 노동의 강도가 세고 감정 서비스직에 가깝지만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할 일, 남들도 다 하니까 어렵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남편은 나에게 "나도 주부하고 싶다. 나도 주부가 꿈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육아 및 가사보다 더 힘들다고 유세하는 말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말에 내가 굴하지 않고 육아에 매진할 수 있는 건, 내가 내 일의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내심이 많아서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읽고 어루만질 줄 안다.
하루 종일 꼭 안아줄 사랑이 넘치고, 같이 노는 동안엔 아이와 많이 웃는다. 즐거움이 놀이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과 교육 활동들을 생각해보면 내 가치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지. 암.
나는 아기에게 대체불가능한 존재인 엄마이자 최고의 교육자이다.

남편이 백수 선언을 했다. 그런데 하필 아내가 오미크론에 걸리고 말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원하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주부가 된 것이다!
첫날은 고기도 사 와서 구워주고 청소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하더니, 둘째 날엔 아기를 데리고 나가서 아들과 하고 싶었던 것들 다 하는 것 같았다. 공원에 데려가서 비눗방울 불어주기. 조종되는 자동차 사서 같이 놀기. (본인만 신나고 아기는 기겁했다.) 그리고 셋째 날부터 뻗었다.

"자기 그동안 진짜 힘들었겠다."라는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덧붙여 만약 둘 중 하나가 주부를 해야 한다면 자기는 일을 할 것이고, 혹시 갈라서서 양육권을 가져야 한다면 자기는 나에게 양육권을 줄 것이라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남의 인정은 필요 없다. 다만 쉽지 않은 일임을 진심으로 이해받은 것으로 충분하다.
오미크론이 이렇게 내 맘을 어루만져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728x90
반응형

댓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