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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엄마의 보통날

(육아에세이 #10) 완전한 타인

by 또리맘님_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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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해요."

27개월 아기가 수줍은 눈빛으로 꽃을 내밀었다.
두 눈이 반짝반짝, 발그스레한 광대가 동글동글.




식물을 무지하게 사랑하는 아기 덕분에 집에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라고 사 준 조화가 있다.





"어머.. 예쁘네. 고마워. 엄마도 또리 많이 사랑해."

아직 말도 서툰 아이의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놀라고 기뻤지만 어쩐지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아이는 태어나 자신과 엄마를 동일시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입을 오물거리며 힘차게 젖을 빠는 일 밖에 없다.
생을 의지할 곳은 오로지 엄마뿐. 엄마의 냄새를 맡고 익숙한 목소리를 찾는다.


조금씩 성장하며 자아가 생기지만 두려움도 앞선다.
홀로 세상에 나아가고 싶지만 엄마와 떨어지기는 싫은 양가감정 속에서 혼란을 느끼며 더욱 엄마에게 집착을 한다.
엄마, 같이 있어주세요. 그래야 안심이 되어요. 바로 17개월 무렵의 재접근기라고 불리는 시기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혼자 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엄마로부터 멀어져 세상으로 향하는 날갯짓을 할 준비를 한다.

엄마 사랑해요. 하고 꽃을 내밀었던 건 더 이상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너무도 확실한 증거였다.



25개월이 되어 아이가 어린이집 오전반에 가기 시작했다.
"친구들, 선생님 보고 싶었어."라는 말을 해서 엄마를 놀라게 하는가 하면,
아침밥을 먹은 후에 어린이집 가방을 끌고 가 유모차에 앉아있어서 엄마 아빠에게 웃음을 주며
생각보다 정말 적응을 잘해주었다. 요즘에는 등원할 때 인사도 대충하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엄마 안녕.

나 역시 살만해져서 피티도 끊고 임신 때 찐 살을 이제 빼 보려는데, 오전에 잠깐 운동하고 하원 시키러 가면
체력이 달려서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재워볼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낮잠을 재우는 건 많은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아직 엄마가 옆에 있어야 낮잠을 자는데.... 자면서 엄마도 꼭 찾는데.... 자다가 울면 내가 가서 토닥여줄 수 있는데.
어차피 자는 거 집에서 재울까 싶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상담 때 담임선생님께 고민을 말씀드리며 혹시 잠에 들지 않으면 집으로 보내셔도 된다,
원에서 낮잠을 재우기 어려우면 말씀 주시라 했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교사의 역할이 적응을 돕는 일이라 최선을 다 하겠지만 한 번 낮잠을 자기로 했다면 적응은 아이의 몫이라고.


'아이의 몫'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이도 이제 제 몫이 필요한 만큼 자랐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아이에게도 져야 할 몫이 있고 내가 아이의 모든 몫을 대신해줄 수는 없구나.'


내 팔뚝만큼 작았던 생명이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엄마에게 꽃을 준다.
매일 아침 엄마와의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나름대로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빈 틈을 주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닌지, 아기라는 생각에 아이를 믿지 못했던 건 아닌지 반성하며
아이의 삶을 관망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날갯짓을 응원하며.




아참.
아기는 첫날부터 엄마 없이 낮잠 들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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