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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엄마의 보통날

(육아에세이) 침대 위의 우주

by 또리맘님_ 2022.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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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새내기 때는 학교가 그리 재미있었다.
어른이 된 기념으로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고, 공들인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가면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수업을 마치면 친구와 냅다 번화가로 가서 다음 날 입을 옷을 쇼핑하며 깔깔대고는 다음날 학교에 가면 할 말은 왜 그렇게 또 생기는지 재잘재잘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도 모자라 메신저에 들어가서 밤새 동기들과 채팅을 하고 놀던 나의 대학교 새내기 시절. 매일이 호기심이고 새로움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때의 F들을 만회하기 위해 훗날 방학마다 계절학기를 들어야 했지만.



직장에 다닐 땐 남자 친구와 둘이 있는 시간이 내 전부가 된 것 같았다. 서로가 너무 바쁘고 힘든 시기, 체력적 시간적 문제는 우리에게 장애가 되지 않았다. 눈 쌓인 겨울날, 보고 싶어서 만났지만 갈 데가 없어서 서로의 코트 속에 손을 넣고, 목적지는 없었으나 추위도 모른 채 두 뺨이 빨갛게 얼도록 하염없이 걸었다.

남자 친구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으면 따뜻하고 묵직하며 일정한 심장소리가 마치 안정제 같아서 이 사람과 같이 산다면 평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달큼한 숨 냄새는 향수 같아서 숨을 내 쉬기를 기다렸다가 크게 들이켜 맡았다. 세상이 우리 둘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2년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니 매일이 재미있고 행복했다. 별 것도 아닌 것들로 기싸움을 했고, 소소한 습관 차이에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금세 아무 일도 아닌 듯 웃고 조잘거렸다.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남편은 김밥을 말아주었고, 퇴근할 땐 꽃다발을 들고 왔다.

4개에 천 원에 세일하는 무를 사 와서 둘이 부엌에 자리 잡고 앉아 뚝딱뚝딱 잘라 깍두기를 만들어 1년 내내 잘 먹었다. 퇴근 후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뭘 하든 함께 집에 올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같이 눈 뜨고 하루를 시작함에 감사했다. 주말이면 내 다리를 베고 티브이를 보던 남편이 어느새 그르렁 코를 골며 잠이 드는데 얼마나 피곤했을까 안쓰러운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뒤통수가 참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남자 친구의 숨 냄새 대신, 남편의 뒤통수 대신, 우리 아기의 작은 완두콩 열 알이 있는 발을 연신 만진다. 동글동글한 머리를 쓰다듬는다. 통통한 볼은 아까워서 닳을까 못 만진다.

세 식구 늘어지게 대짜로 뻗어서 푹 자고 일어난 토요일 오후 잠에서 깨서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그때가 내 삶에서 아마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금의 내 우주는 안방의 널찍한 패밀리 침대다.
어쩔 때는 아기가 저기 먼 곳에서 지구별로 와서 언어부터 배워가는 똑똑한 외계 생명체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는 시간이 되면 자기 만의 우주를 만들며 또다시 자기 별로 돌아가겠지.



얼마 전 아이가 둘이 된 대학 친구가 연락이 왔다. 그때가 재밌었노라, 우리는 참 밝게 빛났노라. 하지만 나는 안다.
훗날 이 생을 돌이켜봤을 때 아기를 키우고 있던 그때의 우리가 참 행복했노라 이야기를 나눌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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