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육아/엄마의 보통날

남편의 자발적 백수생활 종료 후 남은 것

by 또리맘님_ 2022. 5. 31.
728x90
반응형

▶︎ 관련글 2022.03.09 - [육아/엄마의 보통날] - [육아에세이] 남편의 백수선언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박재범이 그가 만든 레이블인 AOMG 대표직을 사임했을 때, 남편 역시도 꼼지락꼼지락 퇴사를 준비했다.
나에게 박재범의 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남편의 퇴사는 그러려니 했다.

그로부터 3개월. 짧기만 한 것 같지만 일 년 중 4분의 1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늘 함께 했고,
아기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적응하며 말이 트이고 커가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다.
오늘은 남편의 자발적 백수생활 (육아휴직이라고 하면 아니라며 몸서리치는) 기간 동안 얻은 점 세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외로웠던 육아는 충만함으로


남편이 옆에 있기 전까지, 아기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루 종일 아기와 엎치락 뒤치락을 함께 했다.
유일하게 허용되는 나의 시간은 아기가 낮잠을 자는 세 시간뿐, 아기를 눕혀 재우고 나면 왠지 모르게 진이 빠졌다.
허한 마음에 단 음식도 많이 시켜먹었다.
아기가 낮잠에서 깨고 저녁을 먹이고 나면 남편이 빨리 와줬으면 하고 시계를 쳐다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혼자 쉬고 싶었기에 유일한 내 시간에 남편이 옆에 있는 게 걸리적거리고 귀찮았다.
출근 안 하냐 소리가 절로 나온 것은 돌이켜보면 좀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일이기에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남편은 최고의 육아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혼자 했던 돌봄을 둘이 나눠하니 일이 아니라 가족의 추억이고 재미로 바뀌었다.
같이 아이를 보고 함께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차곡히 쌓인 행복한 기억

아기는 두 달 동안 오전 시간만 어린이집에서 보냈는데, 덕분에 오후 시간은 매일같이 가족 나들이를 갔다.
날씨 좋은 날은 집 근처 공원도 소풍에 온 것 같은 장소가 되어주었고,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는 것도 나들이 같았다.

이제껏 주말이라 차가 밀려서 가지 않았던 관광지들을 가고  
원주, 파주, 일산, 대구, 강릉 등 익숙한 곳을 벗어나 곳곳에서 추억을 쌓았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간 동안은 둘 만의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하원 시킬 생각에 멀리 가진 못했지만
종알종알 티격태격거리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건 오랜만에 느껴보는 둘 만의 즐거움이었고,
카페에 가서 얼굴 맞대고 앉아 각자 할 일을 하는 것 또한 일상 속 편안함에 감춰진 행복이었다.

 

 

아이와의 교감

퇴근하고 들어와 씻고 밥 먹으면 벌써 아기가 잘 시간.

눈을 마주 보고 놀아줄 시간은 없었던 과거의 남편은 아이와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는 지를 잘 몰랐다.
아기라는 낯선 존재를 가까이할 수 있음은 성격과 경험이 합쳐진 산물인데
남편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서울 사람 같은 서울 사람이다. 대충 사람한테 곁을 안 주는 깍쟁이 같다는 이야기.
아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도 없다 보니
책임감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해 나갈 뿐 소울 대신에 허울만 있는 아빠였다.

놀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양육하고 훈육하는가도 서툴러서 처음에는 위태로웠다.
사춘기가 되어 '아빠 싫어요!' 하고 반항하며 집을 나가는 우리 아기의 모습도 잠시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하면 할수록 아이에 대해 알아가고 아이의 몸짓을 이해했다.
물론 육아는 힘들었겠지만 시간과 곁을 내준 만큼 아기는 아빠를 찾고 따랐다.
눈앞에 아빠가 없으면 아빠 어디 갔지? 하고 아빠를 부르고, 핸드폰 하는 아빠 곁에 꼭 붙어서 책을 읽고
낮잠 자는 아빠 옆에서 비비적거리며 아빠가 깨기를 기다렸다.
언제부턴가 엄마, 아빠, 자기 이름 이렇게 꼭 세 개를 같이 붙여 되뇌기 시작했다.
제 딴에는 가족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지금은 말이 막 늘기 시작하는 단계라 내가 아기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남편이 통역을 해 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3개월간의 시간이 진정 값지고 귀했던 이유이다.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 아기 장염으로 인한 입원으로 3개월 중 큰 시간이 소비되었지만 이 또한 삶의 일부인 것을.
하루하루 살아남기 급급해서 살피고 보듬을 수 없었던 과거와는 달리 서로의 삶을 가까이할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이 3개월이 우리 가족의 삶에 묵직한 주춧돌이 되어주리라 생각하며
이 땅의 가족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게 워라밸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 바람을 담고 싶다.

728x90
반응형

댓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