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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엄마의 보통날

(육아에세이 #12) 출산 후의 이야기

by 또리맘님_ 202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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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내가 동물과 다를 바 없구나라는 참담함을 가져다주는 리얼리티다.


출산 후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손을 바닥에 짚자 간호사 선생님은 질겁을 하시며 손목 관절을 쓰면 안 된다고 주먹으로 짚고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렇게 엉기적엉기적 주먹으로 기어서 일어나는 내 모습이 꼭 유인원이 된 것 같았다. 나에겐 이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신생아도 처음 봐서 낯선데 초면이라 나도 어색하다. 내가 낯을 가리면 안 될 것 같은데 낯가림은 어쩔 수가 없다.
머리는 내 주먹밖에 안 되는 조막만 한 아기를 드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단 둘이 방에 있는 모자동실 시간 다가올 때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제일 무서운 건 아기가 울 때다. 배고파서, 똥을 싸서, 기저귀가 젖어 찝찝해서, 배가 아파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내가 뭘 해도 울음이 그치지 않으면 나는 꼼짝없이 얼어버린다.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아기가 발악을 멈추지 않으면 어김없이 수유실로 콜을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아기가 우는데 달래도 그치질 않아요."

그렇게 능숙한 간호사 선생님의 손을 탄 후면 아기는 신기하게 울음을 그쳤다.
한 숨 돌리지만 나만 그런 걸까 자괴감이 들고, 엄마로서의 자신감도 사라졌다. 조리원 간호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나중에는 눈 감고도 기저귀를 갈 수 있을 거라고.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자다가도 눈 감고 기저귀를 가는 나를 보면 그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떼어낼 수 없는 생명체가 이제부터 평생을 내 옆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압박감은 상당했다.
그러면서도 아이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의 양가감정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하필 조리원에서 내 방은 신생아실 바로 앞이라 밤마다 아기들이 응애응애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꼭 내 아기의 소리 같아서 새벽 두시고 세시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창 너머 우리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을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아기는 생존을 위해 운다.
얼마나 목청껏 악을 쓰며 애타게 우는지, 신생아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남들은 조리원 천국이라는데... 나는 잠을 푹 잘 수도, 마음 편히 쉴 수도 없었다.

혼자서 아기와 단 둘이 적막한 집 안에서 세 달 정도를 낮밤 없이 돌보며 집 안에서 지내다 보니 산후 우울증이 육아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갑자기 느껴지는 적막감, 가슴이 쿵쾅거리고 심장이 조여왔다.

얼마 전 친정엄마께서 다시 돌아가도 또리를 낳을 것이냐, 하고 물어보셨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잘 낳았고 못 낳았다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에는 내게 주어진 엄마로서의 무게를 알기에.

향후 적어도 십 년간은 늦잠을 잘 수도 없고, 마음 편히 아플 수도 없을 것이다.
건강하게 성장시키기 위해,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잘 닦인 길로 나아가도록 돕기 위해
부모의 자리에서 가르쳐야 할 질서와 규칙도, 부모만이 알려 줄 수 있는 삶의 가치도 많다.
챙겨야 할 생명이 있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면서 낳고, 또 낳는다.
예쁜 꽃도, 예술 작품도, 예쁜 사람도 계속 보고 또 보게 되는 것 처럼 지구상에 가장 예쁜 게 있다면 동물의 새끼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이런 생명체가 있다니. 그런데 심지어 그 예쁜 자식을 내가 낳았다니 싶다니까!

출산 후의 우울증은 걸리는 사람만 걸리는 게 아니라 모두가 걸리는데 그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한다.
출산 2년이 넘어 듣기 좋을 것도 없는 이 글을 굳이 쓰는 이유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또 출산을 앞둔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도 있더라 정도로 듣고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출산할 때는 열상을 방지하기 위해 회음부를 자르고 꿰맨다. 젖은 쉽게 나오고 쉽게 물리는 게 아니다. 젖 물리는 자세를 연습해야 하고 젖도 내 맘대로 안 나올 수 있다. 젖이 나오기 시작할 때는 젖몸살이 생기는데 처음 겪는 아픔이다.

음, 그리고 아기를 낳고는 손목 보호를 위해 오랑우탄처럼 주먹으로 바닥을 짚어야 한다.

이런 신체적인 변화들 말고, 정신적으로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 썼다.
군필자들은 군대 이야기로 밤을 새운다 하지만, 엄마들에겐 끝나지 않는 임신과 출산 이야기가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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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 Favicon of https://rurup.tistory.com 푸쥬 ! 2022.06.09 10:02 신고

    고생 많으셨네요. 남일이 아니라 와닿고 공감이 가요.
    약간 이해가 되기 전까지는 영문을 몰라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포스팅 잘 읽고 가요!
    답글

    • Favicon of https://junie0122.tistory.com 또리맘님_ 2022.06.09 12:40 신고

      맞아요. 생명의 탄생에 기쁠 생각만 하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푸쥬님은 일하셔서 터널을 조금 일찍 빠져나오셨을 것 같아요. 아른 거리는 아기는 어쩔 수 없다 쳐두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용 방문 감사드립니다.

  • 잘보고가요.. 엄마들은 대단해요 정말...
    답글

    • Favicon of https://junie0122.tistory.com 또리맘님_ 2022.06.09 12:41 신고

      그래서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으른이 된다는 말이 있나 싶습니다.. 허허. 뚜비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으네공주님은 아내분이실까요?^^

  • Favicon of https://juliestruly.tistory.com is. 2022.06.17 14:02 신고

    또리맘님 글 많은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어요.
    전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요즘 엄마와 갈등이 있어서 참 생각이 많은데요
    부모님께서, 특히 엄마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키우셨는지를 요즘 많이 생각하게 되면서
    감사하고 미안하고 그런데도 서운하고 복잡한 심정입니다 ㅠㅠ

    또리맘님 분명 잘 하고 계실 것 같아요 :) 계속 화이팅입니다!
    답글

    • Favicon of https://junie0122.tistory.com 또리맘님_ 2022.06.17 17:41 신고

      엄마와 딸은 원래 그런 관계 아닌가요? ㅎㅎ Trust me, Ive been there!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애틋한 관계로 돌아오실 거에요.
      쥴리님 이 글을 읽으시다니 운이 엄청 좋으셔요!! 저는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준적이 없어서 좀 많이 헤맸어요. 다들 자식 예쁜 얘기만 하자나용.. 언젠가 같이 이야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