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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세이#17) 언제나 기다릴게 아빠와 함께 슈퍼마켓을 가기로 하고 현관문 앞에 서서 엄마와 인사까지 했으면서 현관문이 닫히니 현실이 보이는지 금방 문을 열어 달라 엄마를 찾아요. "경찰차 고치게 건전지 사와. 심부름 잘하고 와. 엄마는 기다릴게." 엄마와 함께 하고픈 마음 한 움큼을 집어삼키고 씩씩하게 뒤돌아서 가는 또리를 보며.... 기특해라 우리 아기. 많이도 자랐네. 블록 장난감으로 길을 만들어 그 위를 올라가 걸으며 하는 말,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엄마가 있지." 길의 끝에는 엄마가 기다린다 잘 놀다가도 "엄마 이것 보세요." 하고 한달음에 달려와서 놀이한 것을 보여줘요. 엄마 이리 와 보세요, 해서 안 가면 올 때까지 "이리 오세요. 이리 오세요." 귀찮지만 안 갈 수는 없어요. 가보면 나름 귀엽게 만들어 놓은 것이.. 2022. 11. 12.
(육아에세이 #16) 엄마는 사랑 유모차 속 갓난아기가 고개를 못 가누고 옆으로 고꾸라져있다. 뒤에 서 있는 아기 엄마는 알 턱이 없지. 안타까움으로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때 지나가시던 아주머니 한 분께서 순식간에 아기 엄마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대답도 듣기 전에 쏜살같이 사라지셨다. 일명 '치고 빠지기' 상대가 참견이라 느끼기 전에 시야에서 휘리릭 사라져 버림으로써 아기 엄마의 언짢을 수 있을 감정을 원천 차단함과 동시에 자신의 의견은 확실히 전달하는 한국 할줌마들의 대화 기술이다. 아 너무 귀여우셔. 나는 이런 할줌마들의 오지랖이 참 좋다. 그러나 친정엄마의 잔소리는 왜 이리 듣기 싫은걸까? 아기 하원시키고 바깥나들이 간다고 말씀드리니 집에 있지 애 피곤하게 밖으로 끌고 다닌다며 아이가 바깥활동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딸의 .. 2022. 9. 3.
(육아에세이 #15) 생선 대가리만 먹을 운명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생각보다 너무나 작아서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아기는 신생아가 아닌 영아였고 사진에서 봤던 아기들의 모습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였기 때문에 그때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신생아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바닥은 내 새끼손락만하고 머리는 내 주먹만하며 키가 내 팔뚝만 한 생명체를 안는다는 것은 사람이 아닌 생명체, 가령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안는 부들부들 스물스물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윽. (지금은 강아지 고양이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 다소 긴장되긴 해도.) 그렇다 보니 아기를 만지면 닳아서 점점 사라질 것 같아서 만지지도 못하고 안으면 부스러 질 것 같아서 만지는 것도 무섭고 50일 때 까지는 어찌어찌 도우미 이모님이 키워주.. 2022. 8. 19.
(육아에세이 #14) 힘 빼는 육아 20년을 함께한 것 같은 느낌인데 이제 고작 2년 하고도 절반을 함께 살았다니. 아이를 키운 그 동안은 하루하루를 배우고 헤쳐나가는 기분으로 살았다. 게임 퀘스트를 도장깨기 하는 것처럼 수유가 끝나면, 이유식이, 이유식이 끝나면 유아식이 기저귀 단계 신경쓰고 젖병 단계 신경 쓰고, 각종 필수 접종에 검진에 수시로 오는 감기에 장염에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고, 아직도 빠른지 느린지 모자란지 잘 크고는 있는 건지 내가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아리송한 채로 아이 한 명 키우는 것도 온 신경이 쓰이는데 그 와중에 둘째, 셋째 순풍순풍 낳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둘째 계획의 여부를 묻는 질문들에는 난 못해 못해, 딱 잘라 손사래를 친다. 나의 육아에 이름을 붙이자면 '전투 육아'. 아이를 .. 2022. 8. 13.
(육아에세이 #13) 부모 노릇이란 누구에게나 가슴 시리게 서운한 일은 있을 거다. 서운함이란 내가 믿고 사랑하는 이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 때문에 완벽한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없다. 나 역시 부모님께 서운했던 일이, 평생 맘 한구석에 잘 숨어있던 일들이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올 때도 있다. 분명한건 나의 부모님은 기본적으로는 사랑을, 2차적으로는 의식주를, 3차적으로는 내 선택에 관한 무조건 지지와 존중을 주신 훌륭한 분들이시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살아온 여느 부모 세대들처럼 칼퇴나 토요일이 없는 직장생활을 하시느라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신경썼지 감정을 어루만진다던가 자신들의 감정을 돌본다던가 하는 여유는 없는지라 본인들이 자식에게 서운함을 준 적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뭐든 다 내어주었.. 2022. 7. 30.
(육아에세이 #12) 출산 후의 이야기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거룩한 일이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내가 동물과 다를 바 없구나라는 참담함을 가져다주는 리얼리티다. 출산 후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손을 바닥에 짚자 간호사 선생님은 질겁을 하시며 손목 관절을 쓰면 안 된다고 주먹으로 짚고 일어나라고 하셨다. 그렇게 엉기적엉기적 주먹으로 기어서 일어나는 내 모습이 꼭 유인원이 된 것 같았다. 나에겐 이 사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신생아도 처음 봐서 낯선데 초면이라 나도 어색하다. 내가 낯을 가리면 안 될 것 같은데 낯가림은 어쩔 수가 없다. 머리는 내 주먹밖에 안 되는 조막만 한 아기를 드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단 둘이 방에 있는 모자동실 시간 다가올 때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제일 무서운 건 아기가 울 때다. 배고.. 2022. 6. 9.
(육아에세이 #11) 침대 위의 우주 대학생 새내기 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였다. 어른이 된 기념으로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고, 공들인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가면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수업을 마치면 친구와 냅다 번화가로 가서 다음 날 입을 옷을 쇼핑하며 깔깔대고는 다음날 학교에 가면 할 말은 왜 그렇게 또 생기는지 재잘재잘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직장에 다닐 땐 남자 친구와 둘이 있는 시간이 내 전부가 된 것 같았다. 서로가 너무 바쁘고 힘든 시기, 체력적 시간적 문제는 우리에게 장애가 되지 않았다. 눈 쌓인 겨울날, 보고 싶어서 만났지만 갈 데가 없어서 서로의 코트 속에 손을 넣고, 목적지는 없었으나 추위도 모른 채 두 뺨이 빨갛게 얼도록 하염없이 걸었다. 남자 친구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으면 따뜻하고 묵직하며 일정한 .. 2022. 5. 10.
(육아에세이 #10) 완전한 타인 "엄마 사랑해요." 27개월 아기가 수줍은 눈빛으로 꽃을 내밀었다. 두 눈이 반짝반짝, 발그스레한 광대가 동글동글. 식물을 무지하게 사랑하는 아기 덕분에 집에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라고 사 준 조화가 있다. "어머.. 예쁘네. 고마워. 엄마도 또리 많이 사랑해." 아직 말도 서툰 아이의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놀라고 기뻤지만 어쩐지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아이는 태어나 자신과 엄마를 동일시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입을 오물거리며 힘차게 젖을 빠는 일 밖에 없다. 생을 의지할 곳은 오로지 엄마뿐. 엄마의 냄새를 맡고 익숙한 목소리를 찾는다. 조금씩 성장하며 자아가 생기지만 두려움도 앞선다. 홀로 세상에 나아가고 싶지만 엄마와 떨어지기는 싫은 양가감정 속에서 혼란을.. 2022. 5. 4.
[육아에세이 #9] 이마트에서 사온 아기 며칠 전 한 유머글을 읽었다. 아이가 부모님께 자기는 어디서 왔냐고 질문하니 이마트에서 사 왔는데 영수증을 찢어 버려 반품을 못해서 같이 살게 되었다고 대답했다고 요즘은 다리 밑이 아니라 마트에서 사 왔다고 한다며 유머로 퍼진 글이다. 어른만 재밌고 아이는 속상했을 그 짓궂은 말에 웃을 수가 없었다. 인정컨데 나는 매사 진지한 편이다. 막연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피난할 때 생긴 말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 근원지를 찾아보니 훨씬 더 이전에 생긴 말이었다. 1457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의 동생 금성대군이 순흥으로 유배를 오게 되는데, 이때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돕기 위해 반란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되고 금성대군뿐 아니라 죄 없는 순흥 사람들이 .. 2022. 3. 19.